스탠포드 스티브잡스 연설문 원문 및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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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포드 스티브잡스 연설문 원문 및 번역 “ 스티브잡스의 스피치를 떠올리면 대부분 ” 아이폰 1 ” 의 프레젠테이션을 떠올리실 겁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전설적인 스피치는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연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연설을 하던 시기가 죽음을 코 앞에 두고 다시 살아나고 직후에 했던 연설인 만큼 말이죠.

그만큼 정말 알맹이만 담겨있고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 영어공부를 하고 있거나 인생의 방향성을 잃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입니다.

스탠포드 스티브잡스 연설 원문 및 번역

스티브잡스 연설

스탠포드 스티브 잡스 연설 txt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연설 pdf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Truth be to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사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 인생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딱 세가지 이야기입니다.

스탠포드 스티브잡스 연설 첫번째 이야기.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첫 번째 이야기는 인생의 점들의 연결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age after the first 6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전 리드 대학에 입학한지 6개월 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18개월 정도는 도강을 하다가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So why did I drop out?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왜 자퇴 했을까요?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저의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 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죠.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녀는 저의 미래를 위해, 대학을 나온 양부모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죠.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하지만 제가 태어나던 마지막 순간에 그들은 여자아이를 입양하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 ” We’ve got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

대기자 명단에 있던 부모님은 한밤중에 이런 전화를 받게 됩니다. ”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입양하시겠습니까? ”

My biological mother found out later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or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생모는 나중에 어머니가 대학졸업자가 아니고, 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것을 알고는, 입양 동의서에 서명을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go to college. This was the start in my life.

몇 달 후에 부모님이 저를 대학까지 가르치겠다고 약속한 다음에야 생모는 입양에 동의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순진하게도 스탠포드 만큼이나 비싼 대학을 선택했습니다.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노동자 계층이었던 부모님이 애써 모아 둔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6개월 후 대학생활은 그만한 가치가 없어 보였습니다.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또 대학이 그것에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게다가 양부모님이 평생 모으신 재산을 쏟아 붓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이 잘 될 거라고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돌이켜 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중 하나였습니다.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far more interesting.

자퇴후에는 관심없던 필수과목들을 그만두고 더 흥미있어 보이는 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silver Jeff deposits to buy food with.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5센트 짜리 콜라병을 팔아 끼니를 때우기도 했습니다.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매주 일요일 밤이면, 모처럼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을 걸어 하리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u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순전히 호기심과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훗날 정말 값진 경험이 되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드리죠.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t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리드 대학은 당시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 곳에 붙어있는 포스터와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 손으로 아름답게 그린 서체는 예술이었습니다.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자퇴를 하여서, 정규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으므로 저는 서체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그때 저는 세리프와 산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 사이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활자 레이아웃을 훌륭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것은 “과학적” 인 방식으로는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아름답고 유서 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어서, 저는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사실, 이 때만 해도 이것이 제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그러나 10년 후에, 우리가 첫 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것들은 나에게 되살아 나왔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그리고, 우리가 설계한 그것을 모두 매킨토시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만약 제가 서체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맥을 복제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실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만약 대학을 중퇴하지 않았다면, 서체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PC에는 지금과 같은 뛰어난 서체가 없었을 것입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미래를 내다보고 점들을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에 뒤돌아 보니, 그것은 매우 분명했습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의 점들을 연결할 수 없습니다. 단지. 현재와 과거만을 연관지어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그러므로 여러분은, 현재와 미래가 어떻게든 연결된다는 걸 믿어야 합니다.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 등. 그 무엇이든,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Because believing that the dots will connect down the road will give you the confidence to follow your heart.

왜냐하면, 현재가 미래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여러분이 가슴을 따라 살아갈 자신감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Even when it leads you off the well worn path. And that will make all the difference.

아무리 험한 길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모든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스탠포드 스티브잡스 연설 두번째 이야기.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운좋게도 인생에서 ” 정말 하고 싶은 일 “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 Steve Wozniak )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제가 부모님 차고에서 애플을 시작한 것은 제가 스무살 때 일입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차고에서 우리 둘이 시작한 애플은 열심히 일한 덕분에 10년 후 4,000명이 넘는 종업원이 있는 20억달러 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바로 그 1년 전에, 우리는 최고의 작품 : 매킨토시를 출시했고 저는 막 30세가 되었습니다.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그리고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어떻게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해고당할 수 있을까요?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i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1년은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lling out.

그러나, 장래를 보는 우리의 비전이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 사이도 틀어지게 되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and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그럴 때, 이사회는 그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세에 퇴출 되었습니다. 아주 공개적으로 말이죠.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삶의 초점을 모두 잃어버렸고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저는 정말, 몇 개월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선배 벤처세대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제게 넘겨진 바톤을 놓쳐버린 것 같았습니다.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나 이렇게까지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자 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그러나 제 맘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해고당했지만 저는 여전히 일을 사랑하고 있었던거죠.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성공한 사람이란 중압감은, 다시 초심자의 가벼움으로 바뀌었고 모든 일에 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During the next 5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 동안, 저는 Next와 Pixar를 창업했고 지금은 아내가 되어 준 그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on the world.

Pixar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r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Next 인수와, 저의 애플 복귀 후 Next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 많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입에 쓴 약이었지만, 저에게는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인생이 배신하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저를 계속 움직이게 했던 힘은. 제 힘을 사랑하는 것 뿐이였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여러분의 연인이 여러분에게 의미하는 것처럼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일은 여러분 삶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이고, 여러분이 위대하다고 믿는 그 일을 하는 것만이 진정한 만족을 줄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and Don’t settle.

위업을 달성하는 것은 당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 뿐입니다. 그 일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세요. 현실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Dont’ settle.

모든 위대한 관계들이 그러한 것처럼, 시간이 갈수록 더 나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추구하십시오. 안주하지 마십시오.

스탠포드 스티브잡스 연설 세번째 이야기.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

저의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17 살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꼭 성공할 것이다. ”

It made an impression one me, and since ther,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이 글에 감명을 받은 저는, 그 후로 지난 33년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 NO ”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며칠 연속 ” No ” 라는 답을 얻을 때 마다 나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 곧 죽는다 ” 는 생각은 인생의 결단을 내릴 때마다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ment or failure – theses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모든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치스러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은 ” 죽음 ” 앞에서는 모두 떨어져 나가고 정말로 중요한 것들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은 죽을 몸입니다. 그러므로 가슴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About a yer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저는 1년 전 무렵에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30분에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악성종양이 보였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때까지는 췌장이 뭔지도 몰랐죠.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거의 치료할 수 없는 종류의 암이라고 했습니다. 또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 밖에 살 수 없다고 했죠.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 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 동안 해줄것을 단 몇 달 안에 다 해내야 한다는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임종할 때 가족들이 수월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라는 말이었고 작별 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sy,

그렇게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조직 검사를 받았는데,

where w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 췌장에서 암세포를 채취하는 조직검사 였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저는 마취 상태였는데, 나중에 아내가 말해주길,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하면서 갑자기 울먹거리기 시작했답니다.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희귀한 종류의 췌장암이었기 때문입니다.

I had the surgery and Thankfully,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감사하게도, 지금은 나았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l’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본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랍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ou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있을때 보다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na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죽어서까지 가고싶어 하지는 않죠.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ti.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 죽음 ” 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죽음은 삶을 대신하여 변화를 만듭니다. 죽음은 구세대를 대신하도록, 신세대에게 길을 열어줍니다. 지금 이 순간, 신세대는 여러분입니다.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out it is quite true.

그러나 머지않아서, 여러분도 구세대가 되어 사라져갈 것입니다.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타인의 생각의 결과물에 불과한 ” 도그마 ” 에 빠지지 마십시오.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견해가 여러분 내면의 목소리를 삼키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on.

또, 가장 중요한 것은 가슴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여러분의 가슴과 영감은 여러분이 되고자 하는 바를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렸을 때 ” 지구백과 ” 라고 하는 놀라운 책이 있었는데, 저희 세대에게는 바이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시적 감각으로 살아있는 책이었습니다.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로 제작된 책이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 구글 ” 이 등장하기 35년 전에, ” 책으로 된 구글 ” 같은 거였죠. 이상적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깔끔한 도구와 훌륭한 개념이 넘쳐났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 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그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fraph of e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f if you were so adventurous.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겁 없는 사람이나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는 풍경입니다.

Beneath it were the words: ” Stay Hungry. Stay Foolish “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항상 갈망하라, 우직하게 나아가라 ”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 Stay Hungry. Stay Foolish “

그것이 그들의 작별 인사였습니다. ” 항상 갈망하라, 우직하게 나아가라 ”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 new, I wish that for you. ” Stay hungry. Stay foolsh “

제 자신에게도 항상 그러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시작을 위해 졸업을 하는 여러분에게 같은 바람을 가집니다. 항상 갈망하라. 우직하게 나아가라.

정말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연설은 명연설인 것 같습니다. 영상을 보는 시기에 따라 내가 생각하는 주제와 인생이란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이 불안할때, 좌절감에 휩싸일때 이 연설문을 보며 다시금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현재 내가 하고있는 일이 아무 의미가 없어보여도 나중에 어떤 식으로 연결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며 목표를 향해 우직하게 나아가면 반드시 그 끝에 ” 성공 ” 이란 열쇠가 보일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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